동해선 - 역사(驛舍), 역사(歷史)
정금희는 이번 전시에서 그가 2005년과 2006년에 걸쳐 선보였던 동해선 작업을 확장해서 보여준다. 동해선은 부산에서 시작해 포항과 강릉을 거쳐 두만강까지 연결되는 철도이다. 그는 과거에 동해남부선을 촬영하였고, 최신작에서는 철도 전체로 확장하여 작업 중이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동해선의 가장 큰 변화는 복선 전철화 사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사업 이후에 신설역이 생기기도 한 반면, 폐역된 곳도 존재한다고 한다. 작가는 과거의 작업과 최신 작업에서 사라질 역사(驛舍)의 역사(歷史)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사라져가는 곳은 많은데 작가는 왜 하필 동해선을 선택했을까? 그 이유를 물으니 정금희는 철도의 연결성과 확장성을 꼽았다. 동해선은 단순히 교통 수단의 의미를 넘어서, 우리나라 전체 지역을 이으며 뻗어나가는 상징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작가 노트에 이렇게 썼다. “수십억 년 동안 수많은 별이 탄생하고 사라지고, 현재 눈에는 보이지만 어쩌면 사라졌을 아주 오래전 별들의 흔적이 빛으로 계속 이어지듯이 동해선의 정보도 빛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물의 소멸과 생성을 빛으로 담아내기에 적합한 도구는 카메라일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정금희에게 동해선을 카메라에 담는 행위는 기록의 의미를 넘어서, 우주적 순환을 지켜보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빛을 어떻게 사용했을까? 먼저, 정금희는 해가 잘 드는 낮 시간에 동해선의 신설역을 찍었다. 그는 이 때 2006년과 비교해 너무 많은 것이 변해, 완전히 새로운 대상을 찍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해당 작품을 보면 그가 또렷한 초점으로 담담하게 사물을 바라보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해야할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폐역을 찍은 작품이다. 그는 이 작업을 할 때, 일부러 빛이 아주 약하게 남아있는 밤 시간에 찾아갔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폐역은 주로 1920년에서 1930년대에 지어져 근 백 년만에 사라지게 된 역사(驛舍)라고 한다. 정금희는 완연한 어둠이 찾아오기 5분에서 10분 전, 약한 빛이 남아있는 그 짧은 찰나에 셔터를 눌러 백 년의 역사(歷史)를 담아냈다. 왜 어두운 시간대를 선택했느냐 물으니 작가는 어둠에서 우주의 암흑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소멸의 운명을 직면한 존재를 스러져가는 약한 빛으로 기록했다는 점이 그의 작업에서 시적인 정취를 느끼게 한다.
그가 대화의 마지막에 건네준 명함에는 이전 작업에서 찍었던 티베트 사진이 박혀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곳이 이미 없어져서 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금희는 그 사실을 아쉬워하면서도,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본인이 살고 있는 부산의 사라져 가는 풍경을 또 담아낸다. 그가 언급한 롤랑 바르트의 “사진은 무심하게도 거기에 있었음을 비추면서 동시에 여기에 없음을 비춘다”라는 말 대로, 정금희의 사진 속 풍경은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다. 그러나 그는 작가 노트에 “사라질 역사(驛舍)에서 또 다른 탄생을 기원한다”라고 적었다. 이는 작가가 소멸의 운명에 처한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느끼게 한다. 카메라는 순간을 찍지만, 그 찰나는 억겁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간의 밤을 빛으로 기록하는 그의 행위가 우주의 한 공간을, 그곳에 무엇이 뚜렷하게 존재했음을 은은하게 비추는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
부산프랑스문화원 ART SPACE
작가노트
존재하는 모든 것의 과거는 빛으로 기록된다. 정확하게는 그 빛에 담긴 정보로 남는다. 인간 능력은 138억 년 전의 빛 흔적에서 과거 우주 질서를 발견해 낼 정도로 발전해 있다. 이 세상 먼지 하나도 그저 그냥 존재로 머무는 것은 없다. 빛이 있다면 먼지 하나라도 기록된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의 기억은 의미가 있다. 모든 기억은 과거의 정보를 품고 빛을 남기고, 파장을 남긴다.
동해선 노선도를 보면, 부산-울산-포항-삼척-동해-강릉-속초-제진-감호-안변-고원-라진-물골-두만강까지 연결되어 있다. 한반도 철도망이 유라시아 대륙 철도망과 연결된다면, 문화·교통·물류·에너지 협력의 중심 역할을 동해선이 담당할 것이다. 동해선은 부산-포항의 동해남부선, 포항-삼척 구간의 동해중부선, 삼척-제진(남방한계선)구간의 동해북부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해선 복선 전철화 사업 이전인 2005-2006년 동해남부선을 촬영하였고, 현재는 동해선 전체로 확장하여 작업 중이다. 2006년 작업 노트엔 “여긴 간이역입니다. 이제 곧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추억 빛으로 남게 될 이곳은 간이역입니다. 사라질 것이게 더욱 아름다움을 머금은 이곳은 간이역입니다.” 라고 적고 있다. 지금은 있으나 머잖아 사라질 역사(驛舍)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驛舍)의 기능은 멈췄고, 이어졌던 철로를 걷어내고 있다. 지도에서 옛 동해선 노선이 지워지고 있다. 점과 점을 이었던 선의 경계도 함께 사라지고 이 긴 여정의 마지막, 역사(驛舍)가 사라지고 있다.
역사(驛舍), 그 공간... 과거의 역사(歷史)는 멈췄다. 새 역사(歷史)가 시작될 것이다. 같은 공간에 전혀 다른 사물들과 사람들의 새로운 시간이 채워지면 또 다른 역사가 되어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공간들도 이미 지난 시공간의 정보를 빛으로 품고 이렇게 이어진 것이다. 수십억 년 동안 수많은 별이 탄생하고 사라졌다. 현재 가시적으론 존재하지만 어쩌면 사라졌을 별의 흔적이 빛으로 전달되듯 동해선의 정보도 빛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진은 “무심하게도 거기에 있었음을 비추면서 동시에 여기에 없음을 비추는(롤랑 바르트)” 시간의 상처이지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기억으로서의 기록이다. 이제 역사(歷史)로 남은 역사(驛舍)와 녹슨 철로 등등 동해선의 공간들과 사물들은 어떻게 기록되어 어떤 모습, 어떤 정보, 어떤 파장으로 미래에 전달될까? 행정적인 기록과 과거의 풍경으로만 전해질까? 사라지는 공간의 흔적은 사람들 기억으로 남는다고 하지만 단 하나의 모습으로 기록되진 않는다. 어떤 이의 추억 속 시공간은 그에겐 온전한 기록으로 확실하지만 그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과거 한켠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우주적으로 대부분 공간은 어둡다. 암흑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곧 잊힐 이 공간의 밤에, 약한 빛의 흔적으로 존재를 남긴다. 지금 이 풍경을 과거로 각인한다. 여기에서 나는 또 다른 탄생을 기대한다. 동해선 주변의 공기, 나무, 사물과 풍경들, 철로와 폐역, 그 주변 모든 것들, 밤조차 빛으로 새기고 기록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시공간은 기록되고 사진은 그 시간을 기억한다. 지금 나는 풍경 속에서 사라진 동해선에 대한 기억을 묻고 있다. 오늘의 작업은 다른 시간에 다른 기억으로 소환될 것이다.
정금희
정금희
학력
학력홍익대학교 대학원 디자인공예학과 사진학과 박사 졸업
전시
개인전
2018《화락이토 花落以土》, 부산 프랑스문화원 ART SPACE, 부산
2017《오늘의 날씨》, 갤러리 수정, 부산
2012《BEYOND》, 토요타 포토스페이스, 부산
2011《BEYOND》, 공근혜 갤러리, 서울
2010《함시방》, 썬사인시티, 도쿄
단체전
2021《제5회 고은포토1826 비엔날래 ‘Taking vs Making’》, 부산시민회관, 부산
2019《MindScape》, 온갤러리, 진주
2018《회동담화》, 예술지구P, 진주
2017《2017 대리국제사진전 한국현대사진50》, 대리, 중국
2017《제3회 고은포토1826 비엔날래 ‘UP’》, 스페이스닻, 부산
2016《Photo Speaks 2016》, 미래백년관, 서울
2015《Photo Speaks 2015》, 부산 프랑스문화원 ART SPACE, 부산
2013《기억》, 북경주중문화원, 중국
2013《제1회 고은포토1826 비엔날래 ‘사진꿈, 꿈사진’》, 부산문화회관, 부산
2011《View, Review, Preview》, 한벽원미술관, 서울
《Help Earth》, 갤러리 이앙, 서울
2010《부산국제아트페어》, 부산문화회관, 부산
2009《홍익대 60년 展》, 현대미술관, 서울
2009《국제사진영상기획전》,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