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멈추는 시간
근사한, 바다
광활한 바다를 눈에 담고, 오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안식을 찾는 사람이 있다. 작가 최혜원의 이야기다. 내륙 지방에 줄곧 살던 그는 바다가 있는 도시로 거처를 옮긴 후부터 힘에 부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바다를 찾았다고 한다. 최혜원은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안식처가 되었던 바다를 새롭게 표현했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바다를 ‘일상 속 탈출구’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그는 작업을 통해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것일까? 그러나 최혜원은 자연물로서의 바다를 그대로 재현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상에서 바다의 이미지를 포착했다. 촘촘한 타일 위에 레진으로 파도를 표현하거나 파도 장치를 부착한 욕조 모양의 조각을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최혜원은 바다가 아닌 대상에서 바다를 본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바다를 보러 갈 힘조차 없을 정도로 지친 어느 날, 목욕을 하던 중 욕실 바닥에 있는 물과 거품이 마치 바다와 파도처럼 보였다고.
더 나아가 그는 영상 〈바다를 담은 터널〉에서 도시의 네온 사인과 화려한 불빛이 비치는 터널 벽면을 담아냈다. 제목이 시사하듯, 이는 태양빛이 산란하는 바다의 표면을 떠올리게 한다. 관객들은 어두운 공간 속에서 휴양지에서 쓸 법한 의자에 앉아 화면 속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게 된다.
그러나 최혜원이 만들어낸 바다는 엄밀히 말하면 바다가 아니다. ‘마치 바다처럼 보이는’ 무언가다. 그는 광활한 바다를 굳이 좁고 빽빽한 타일 안에 표현해냈고, 욕조 안에 담았으며, 터널 속에서 찾았다. 다시 말하면, 최혜원이 찾은 ‘마치 바다 같은’ 이미지는 모두 좁은 공간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물과 인공물, 광활함과 한정적 규모로 대립되는 ‘바다’와 ‘바다 같음’은 그 간극에서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최혜원은 사회 구조와 개인적 욕망의 대립, 위로받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못한 현실을 직시한다. 이는 그가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생겨난 삶의 모순되는 지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의 작업이 우리 내면에 파문을 일으키는 원인은 바로 이 간극에서 비롯한 것이다. 따라서 최혜원이 재현한 대상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상징하는 실재하는 바다가 될 수 없다.
결국, 최혜원의 ‘바다 같은’ 작품은 모두 실재하는 바다의 근사치로 존재할 것이다. 사전에 따르면 ‘근사(近似)’는 ‘거의 같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근사하다는 칭찬은 바로 이 뜻에서 비롯된다. 그가 만들어낸 근사한 바다의 수평선 너머 세계를 그려보며, 슬픔과 이에 굴복하지 않는 삶의 의지를 역설적으로 느낀다.
부산프랑스문화원 ART SPACE
작가노트
나는 지금 작은 위로조차 결핍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륙 지방에 오랜 기간 살아온 나는 바다가 있는 도시에 와서 더욱 쉽게 바다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내가 느낀 바다는 스트레스가 많은 일상에서 나의 탈출구가 되어주었고, 그곳에서 볼 수 있는 파도는 힐링을 느끼는 나만의 포인트가 되었다.
내가 느끼는 파도는 모두에게 공평하며, 바람에 일렁이고, 생동감을 느낄 수 있고, 심심하지 않다.
자극 많은 우리의 삶과 닮은 부분이 많다고 느끼면서도, 힐링을 느끼는 것은 참 모순적이다.
이런 파도는 시간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내가 보고 싶을 때 무조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 나는 욕실에서 샤워하며 문득 바닥을 보았을 때 내 공간 안의 또 다른 바다를 마주했다.’
밀려 나오고 나가는 흰 물결들이 마치 파도처럼 느껴졌다.
나의 작업의 전체적인 맥락은 일상 속 포착되는 순간을 바다와 연결 짓는데 초점을 둔다.
답답한 나의 공간,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공간 또는, 나의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여 바다를 찾는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본인, 그리고 일상에서의 여유를 쫓는 본인이 대립하며, 그 간격에서 나오는 딜레마는 촘촘하고 답답해 보이는 타일 안에 광활한 바다를 넣는 작업으로 풀어간다.
최혜원
최혜원
학력
2017 동아대학교 조각학과 석사 졸업
2015 동아대학교 미술학과 학사 졸업
개인전
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