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아프니까 //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 꽃도 열매도, 그게 다 //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이 정록의 ‘의자’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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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인간과 지구 사이의 접점이라면 가구는 인간과 건물 사이의 접점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안락하게 거주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집과 같은 건축물을 짓는다. 건축물 안에서 쉬고, 눕고, 일하기 위해서는 가구가 필요하고 그중 의자는 가장 중요한 접점의 하나이다.
건물이라는 공간과 인간의 신체가 직접 부딪히는 것은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의 대표적인 것이 의자이다. 의자는 앉기 위해 만들어진다. 앉아서 쉬고,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고, 일하기에 그 보다 좋은 가구는 없다. 물론 이런 전통은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니었지만 이제 일상화 된지 너무 오래이다. 때문에 집집 마다 의자들이 있다. 넓고 긴 소파부터 작은 스툴까지 다양한 종류의 의자들이 용도에 맞춰 거실, 안방, 공부방, 서재, 부엌, 화장실 등곳곳에 있다.
그리고 이 의자들은 이사 갈 때, 특히 재개발과 재건축이 이루어질 때 가장 많이 버려지는 가구의 하나이다. 통계를 내본 적은 없지만 재개발 지역에서 버려지는 가구들은 순위는 오래된 장롱, 장식장, 의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그것들중 의자가 가장 다양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고 숫자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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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백은 재개발 지역의 버려진 의자들을 찍었다. 재개발 지역은 사진 찍는 이들에게 확실히 촬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장소이다. 사람들이 쓰던 집, 방, 마당 들이 버려져 폐허가 되어가는 과정이 눈을 사로잡고, 곧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 감정을 자극한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재개발 지역을 찍는다. 나도 그랬었고 지금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준백의 의자 사진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 중의 하나는 사진 속에 온전히 담겨 있지않는 다른 공간들은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조준백은 버려진 의자라는 소재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 작업을 완결된 상태로 만들어 냈다. 기술적으로 스스로 마음에 차지 않는 점들이 다소 있을지 모르지만 작품 전체가 보여주는 분위기와 힘이 그것들을 보완하고 남는다.
버려진 의자들은 단순한 의자를 넘어서 거기에 앉았던 사람들, 그들이 했던 일들을 상상하고 떠올리게 하는 기점이기도 하다. 때문에 조준백은 <누군가가 의자에 앉아서 벽면에 걸려있는 TV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다. 그곳에 있는 의자들은 버려진 낡은 의자들이 아니라, 생각하고 말하고 울고 웃으며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흔적들을 확인하는 의자들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의자만이 아니다. 마당과 방과 버린 그릇들과 침구 등이 모두 그렇다.
사진은 근본적으로 일종의 제유법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사진은 필연적으로 눈에 보이는 대상의 일부를 찍을 수 있을 뿐인 세계의 파편이기 때문이다.
제유법적 대상으로서 의자는 재개발의 과정과 거기 살았던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일종의 열쇠가 되는 말이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이 있다.
짙은 초콜릿 색의 의자가 오른쪽에 있고 왼쪽 창으로 재개발의 풍경이 보이는 사진이 그것이다. 창문은 햇빛을 밭아 거의 금빛으로 빛나는 프레임을 이루고 철거를 위해 금속 비계가 세워진 건물들과 쓰레기가 흩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어두운 색의 의자는 그 광경과 평행을 이루며 정면을 향해 비스듬히 놓여 있다. 이 양자의 대비는 재개발의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더구나 의자와 창문 모두 사진 프레임으로 잘려져 나가 부분이 보일 뿐이어서 재개발 과정의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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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지역의 의자들은 대부분 쓰레기로 버려지지만 가끔은 살아남아 재활용 된다. 재개발을 피한 지역에 골목에 놓여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거리 의자, 이른바 스트리트 퍼니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본래 스트리트 퍼니춰로서의 인도의 의자들은 오래 쉬기 위한 가구는 아니다. 아마도 앉아서 쉬라는 뜻이기 보다는 잠깐 머물다 지나가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앉아서 쉰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휴식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앉아서 쉰다는 것은 주위의 풍경과 경관을 소유한다는 뜻이다. 비록 그 경관이 철저히 인위화 된 곳일지라도 눈을 들어 앞, 뒤, 옆을 바라볼 여유를 가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압축되고 빨라진 시공간에서 잠시 빠져나와 화폐자본의 변신인 도시를 느린 눈길로 읽어보거나, 아예 잊어버려야 한다.
하지만 길거리 의자들은 대개 그런 기능이 없다. 플라스틱, 화강암, 금속등의 만들어진 재질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내구성과 함께 딱딱하고, 차갑거나 뜨거운 바닥들은 오래 앉아 있을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대체하는 것이 사람들이 가정에서 사용하던 의자들로 만들어진 골목길의 새로운 공간이다. 의자의 재질은 나무, 플라스틱, 합성 가죽일 경우가 많지만 일부는 천 소파도 있다. 그 의자들은 물론 내구성은 없고 낡은 것이지만 친근감은 더하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느긋하게 구경하거나 바둑을 둔다. 그 의자들에는 사람들의 체취와 흔적이 배어있다. 그 체취, 흔적은 익명의 무수한 사람들이 스쳐간 공공적인 거리 가구 의자에 새겨진 그것과 다르다. 때문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그 의자에는 있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들이 의자를 밖에 끌어 내놓은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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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백의 의자 사진들 중 상징성을 강하게 띠며 눈길을 끄는 의자들은 조감도적 시야에서 촬영된 의자들이다. 예를 들면 회색 사무용 의자가 시멘트 바닥에 거꾸로 쳐박혀 있는 사진이 그것이다. 팔걸이가 떨어져 나가고 등받이가 부러진 회색의 플라스틱 재질의 의자는 마치 높은 곳에서 추락한 것처럼 보인다. 의자라기 보다는 다리가 부러진 거대한 회색 곤충처럼도 보이고, 추락한 동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심지어 재개발에 의해 삶이 무너진 누군가의 육신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이런 의자를 이루고 있는 플라스틱에 관해서 롤랑 바르트는 ‘플라스틱은 본질적으로 연금술적인 물질이고, 물질이라기 보다는 무한한 변모의 개념 자체이며, 움직임의 자취이다.’라고 한다. 즉 그 가소성과 유연성 때문에 단단한 물질의 느낌보다 변모가 본질인 듯 보인다는 것이다. 어쩌면 높은 곳에서 내 던져져 부서진 의자도 플라스틱의 변모의 한 면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의자 외에도 높은 곳에서 바라본 의자들은 재개발을 배경으로 넓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그 공간의 점유, 위상 때문에 의자들의 존재감은 두드러져 보인다.
조준백이 찍은 의자 가운데 커튼을 배경으로 찍은 나무 의자는 재개발의 우울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집약해서 보여준다. 마치 연극이나 영화의 무대장치처럼 낡은 흰 커튼에는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어지러이 비친다. 그 사이로 사선으로 들어온 햇빛이 커튼에 무늬를 이루듯 얼룩진다. 단단해 보이는 나무 의자는 그를 배경으로 어두운 실루엣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조준백이 찍은 의자들은 확실히 연극적이다. 의자들은 연극적 무대 장치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서사성을 불러일으킨다. 서사는 한 장의 사진 내에서도 이루어지기도 하고, 여러 장의 사진들이 묶여서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그 서사성은 사진을 읽어내는 개인의 처지와 취향에 따라 달라지지만 공통점도 있다. 그 공통점들은 재개발의 경험과 집과 가구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대한민국처럼 부동산, 아파트가 재산의 중심을 이루고 강렬한 욕망과 결핍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이는 필연적이라 할 것이다.
의자가 누군가의 방에 놓이고 사람이 쓰고 버리는 것이 필연적이듯이 사진 속의 의자가 상상과 서사의 중심이 되는 것도 필연적이다. 조준백의 의자 사진들이 사진을 본 뒤 돌아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되는 까닭은 그것 때문일 것이다.
작가, 강홍구
타인의 부재로 시작되는 상상의 타임슬립 time slip
의자의 존재 이유는 사람이다. 다양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각각 마다 다른 생각과 고민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이 의자들의 존재 이유였고, 그 사람들에게도 의자는 생각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 ‘존재存在’를 확인하는 사물이자 공간이었다. 의자에 앉아 자신 삶의 존재를 확인하던 사람들은 이제 떠나가고 없다.
텅 빈 곳, 버려진 의자… ‘타인의 부재’로 시작되는 상상의 타임슬립time slip. 난 거기 있었다. 다양한 의자로 표현되는 지난 시절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 지난 과거 언젠가 이곳에 존재했던 누군가의 ‘부재不在’로 나의 작업은 시작된다.
재개발 지역을 찍다 보니 곳곳에 버려진 의자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상상한다. 저 의자에 앉았던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람들이 떠나간 텅 빈 집, 문을 열고 들어가 거실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의자를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마치 누군가가 의자에 앉아서 벽면에 걸려있는 TV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다. 그곳에 있는 의자들은 버려진 낡은 의자들이 아니라, 생각하고 말하고 울고 웃으며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흔적들을 확인하는 의자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의자들의 위치를 옮기거나 연출 없이 놓여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내가 사진을 찍기 위해 현재 남아있는 ‘시공간時空間’에 개입하게 되면 과거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흐트러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이러한 소중한 흔적에 더하여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아쉽고 그리운 마음마저 사진 속에 담고 싶었다.
조준백
전시
개인전
2022 《TIME SLIP》, 부산 프랑스문화원 ART SPACE, 부산
단체전
2021 《제5회 고은포토1826 비엔날레》, 부산시민회관, 부산
2001 《도심속의 풍경 7인전》, 태화백화점 8층 원앙홀, 부산
2000 《제8회 보시니 좋더라》, 부산가톨릭센터 전시실, 부산
2000 《바다가 보이는 풍경》, 부산역 전시실/dd, 부산
제목입니다